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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믿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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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믿는다는 것 _자유롭고 의미롭게_기독교 신앙, 다시 생각해보기
믿는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뉘앙스가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첫째, ’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지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떤 대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나는 지구 편 평설을 믿는다’와 같이, 특정한 사상, 내용에 지적인 동의를 하는 것을 말할 때도 ‘믿는다’는 말을 쓸 수 있겠습니다.
셋째, ‘나는 민주주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민주주의의 가치에 동의하고, 그 가치에 맞는 실천들을 통해 민주주의를 내면화하는 것에도 ‘믿는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투표를 하고,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참여하거나, 자신이 속한 크고 작은 모임들에 민주주의가 실현되도록 실천해 보는 것 등등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내 존재를 구성해 나가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또 그 가치가 사회와 현실을 구성하게 하는 역동적인 믿음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난 널 믿어!’라는 말을 쓸 때는 단순히 ‘네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한다’ 라거나, ‘너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니 해낼 수 있음에 동의한다’라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친구로서 응원하고, 언제든 함께 고민을 나누고 격려하며,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며 서로의 존재에 영향을 주고받음을 표현하는 말이겠죠?
마찬가지로 종교의 영역에서 ‘신을 믿는다’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신을 믿는다’는 표현은 단순히 ‘어떠한 신의 존재가 있다고 인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도, 기독교에서 묘사하는 신의 이미지, 설명을 인정한다는 것에 그치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표현하는 신의 모습, 그러한 신의 이미지가 주는 가치와 방향성을 내면화해서, 나의 삶에 적용해 나가는 구체적인 실천들로 만들어질 때, ‘종교를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표현을 쓸 수 있겠죠.
믿음의 구체적인 실천들을 종교의 공간에서 실천하는 리추얼(이런 실천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에만 제한시키셔서, 특정 종교적 행동만 반복하게 하는 것은 ‘믿음’의 역동성을 제한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교리(삼위일체, 이신칭의, 예수의 신성 인성 두 본성교리 등)를 수용하면 믿음을 가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믿음을 어떤 내용에 동의하고 안 하냐의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셨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어떤 부름에 반응해서 자신의 삶의 여정을 시작한 아브람의 실천들을 보며 하나님이 그 믿음을 좋게 보셨다고 평가했다는 기록은, 이 이야기를 듣는 이들에게도 항상 새로운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브람의 많은 실수들,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의 선택들이 쌓여서 ‘믿음’이란 것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복음서에서 제자들은 예수의 정체성을 정확히 캐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익숙했던 삶의 자리를 벗어나서 예수를 따라 여행에 참여하는 것, 매 순간의 선택의 과정들을 통해 ‘믿음’이란 것이 내면화됩니다.
매일의 실천들이 때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아브람과 예수의 제자들처럼 실수로 끝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을 쫓는 삶을 살고자 계속 노력할 때, 어느 순간 이 믿음의 과정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는 믿음을 선물, 은혜, 은총과 같은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