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의미롭게_기독교 신앙, 다시 생각해보기 : 믿는생각 유튜브 채널 멤버쉽 컨텐츠로 먼저 공유한 후, 한 달에 한 번씩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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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틀에 맞지 않아도 괜찮아요
_자유롭고 의미롭게_기독교 신앙, 다시 생각해보기
종교를 생각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실의 뒷면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현실을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뒷 이야기’들도 궁금해하는 상상의 자유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죠. 종교는 모든 질문들을 소중히 여기며, 삶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켜나가도록 돕고, 우리가 현실에 파묻히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합니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분방함이 불편해질 때, 사람들은 어떠한 ‘틀’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기 혼자만 어떠한 강박에 빠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종교의 리더십이 엄격한 틀을 강요하고,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려 할 때, 종교는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기독교 신앙의 친구들이 좋았고, 처음 다닌 교회도 너무 좋았습니다. 교사가 되고자 교대를 다니고 있었지만, 종교의 매력에 푹 빠졌던지라 신학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 와중에 주변에서 신학교를 권면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원래 종교 주제의 질문이 많았던 편이라 신학교를 가야겠다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다니던 교회가 장로교였던지라, 서울에 있는 장로교신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수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에서 일을 하면서 장로교 목사가 되는 훈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저도 모르게 특정 교단의 틀에 맞는 맞춤형 목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현대신학의 바다에 빠져서 ‘신앙의 깊이와 넓이가 엄청나구나’라고 느꼈지만, 교단의 목사 라이선스를 갖는 순간 제가 교회현장에서 말할 수 있는 폭은 너무 좁아졌습니다. 교단의 위에 있는 분들이 ‘이것이 죄다’라고 명명하는 순간, 월급쟁이처럼 사는 목사는 교회에서도 똑같이 ‘이것이 죄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죠.
인생을 걸고, 더 큰 신비를 쫓아서 신학교를 왔는데도 그렇게 기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를 시작했고, 뜻이 맞는 교회들이 연대하는 교회 간 연대망도 새롭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제도권의 교단 교회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제도권교회마다 아름다운 전통이 있고, 배울 점이 있습니다. 개신교 교회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 성공회교회, 정교회 등도 모두 아름답고 소중한 교회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틀에 꼭 맞지 않아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목소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교회가 수천 년, 수백 년 전에 합의한 교리틀에만 의존하지 않더라도, 현대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신앙의 고민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서점에 있는 탈-교단적인 다양한 신앙서적들, 유튜브의 종교 콘텐츠들을 보면서 충분히 자기만의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운동을 하는 사람이기에 교회모임에 애정이 있지만, 솔직히 교회 없이 홀로 신앙생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01 틀에 맞지 않아도 괜찮아요
2024/08/08
02 신앙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루틴 만들기
_자유롭고 의미롭게_기독교 신앙, 다시 생각해보기
보수적인 교회에서 엄격한 규칙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쳐서 나오는 일이 많습니다. 홀로 신앙생활을 하거나, 다른 교회를 찾으려 하게 되는데요, 가끔씩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존의 엄격한 규칙의 교회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요예배, 주일예배, 새벽예배, 여러 소그룹모임에 참여하고 교회가 정해놓은 헌금규칙을 충실히 지킬 때에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면, 그런 것들을 그만두었을 때 공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다른 방식의 신앙생활이 가능하려면,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을 찾아야 합니다.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늘리기 위한 최소한의 루틴이 필요한 것이죠.
만약 교회 없이 홀로 서가는 신앙인이 되려 결단했다면 어떤 것을 계획해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목사를 그만두고, 또 마음이 맞는 교회를 찾지 못했다면 이런 것들을 시도해 보았을 것 같습니다. 한 달에 한 권 신앙서적 읽기, 수요일이나 주일에 성경을 읽는 시간 갖기, 매주는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참여해 볼 수 있는 기독교 관련 단체 행사 알아보기 등등.
신앙의 본질은 ‘일상에서 주변사람들을 어떻게 돕고 살아가느냐’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어떠한 리듬도, 루틴도 없다면 그러한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어떠한 루틴도, 수행도 없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 분은 이런 글을 찾아보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루틴’이라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공부를 하거나, 심지어 취미생활을 하는데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를 다닌다 할지라도, 개인이 스스로 고유한 삶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게 첫째로 중요한 일입니다. 공동체 모임으로 함께 하는 루틴은 언제나 보조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이때 공동체 루틴이 보조적인 것일지라도, 가볍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종교가 아닌 일반모임에서도 모임에 늦으면 지각비를 내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모임이 가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교회답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교회로 모이는 개인들의 일상의 시간표를 좌지우지할 만큼 과도하게 간섭하는 폭력적 규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로 모이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고유 리듬과 공명해서 상호 간에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서 공동규칙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개인과 공동체, 양쪽의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합의점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새로운 교회운동의 가능성이 달려있습니다.
개인의 삶에 어떠한 규칙도, 리듬도 만들어내지 않고, 그저 ‘아무것도 안 함’ 상태가 신앙의 최종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동시에 어떠한 규칙도, 루틴도 그 자체가 신앙의 본질일 수도 없습니다. 규칙 자체에 대한 우상숭배와 아무것도 안 하는 게으름과 무책임함 사이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낼 수 있어야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신앙생활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02 신앙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루틴 만들기
2024/08/08
03 믿는다는 것
_자유롭고 의미롭게_기독교 신앙, 다시 생각해보기
믿는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뉘앙스가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첫째, ’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지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떤 대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나는 지구 편 평설을 믿는다’와 같이, 특정한 사상, 내용에 지적인 동의를 하는 것을 말할 때도 ‘믿는다’는 말을 쓸 수 있겠습니다.
셋째, ‘나는 민주주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민주주의의 가치에 동의하고, 그 가치에 맞는 실천들을 통해 민주주의를 내면화하는 것에도 ‘믿는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투표를 하고,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참여하거나, 자신이 속한 크고 작은 모임들에 민주주의가 실현되도록 실천해 보는 것 등등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내 존재를 구성해 나가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또 그 가치가 사회와 현실을 구성하게 하는 역동적인 믿음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난 널 믿어!’라는 말을 쓸 때는 단순히 ‘네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한다’ 라거나, ‘너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니 해낼 수 있음에 동의한다’라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친구로서 응원하고, 언제든 함께 고민을 나누고 격려하며,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며 서로의 존재에 영향을 주고받음을 표현하는 말이겠죠?
마찬가지로 종교의 영역에서 ‘신을 믿는다’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신을 믿는다’는 표현은 단순히 ‘어떠한 신의 존재가 있다고 인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도, 기독교에서 묘사하는 신의 이미지, 설명을 인정한다는 것에 그치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표현하는 신의 모습, 그러한 신의 이미지가 주는 가치와 방향성을 내면화해서, 나의 삶에 적용해 나가는 구체적인 실천들로 만들어질 때, ‘종교를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표현을 쓸 수 있겠죠.
믿음의 구체적인 실천들을 종교의 공간에서 실천하는 리추얼(이런 실천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에만 제한시키셔서, 특정 종교적 행동만 반복하게 하는 것은 ‘믿음’의 역동성을 제한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교리(삼위일체, 이신칭의, 예수의 신성 인성 두 본성교리 등)를 수용하면 믿음을 가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믿음을 어떤 내용에 동의하고 안 하냐의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03 믿는다는 것



